책소개
- 검은 고양이
1843년 발표. 《단편집》(1845)에 수록되어 있다. ‘플루토(Pluto: 冥界(죽은 사람이 간다는 사후세계)의 왕)’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를 길러 왔던 주인공이 술버릇이 나빠 발작적으로 그 고양이의 한쪽 눈을 도려내고 며칠 후에는 나무에 매달아 죽여 버린다. 바로 그날 밤에 화재가 일어났는데, 오직 한 군데 타다 남은 벽에는 목에 고리가 걸린 고양이의 거대한 그림자가 비쳐 있었다. 병적인 범죄 심리와 공포분위기를 검은 고양이로 상징한, 작가의 초기 작품 중 대표적 작품이다.
-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1841년 발간. 그의 최초의 추리소설이다. 모르그 가에서 발생한 이상한 살인사건은 살인행위의 잔학성과 이해할 수 없는 동기 때문에 민완 형사들이 모여 있는 파리 경찰도 당황한다. 이때 탁월한 분석 능력이 있는 뒤팽이 등장하여 이 사건을 해결한다. 구성과 분석 ?추리에 있어 경탄할 만한 솜씨를 보인 이 단편소설로 포는 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으며 세계 추리소설의 아버지가 되었다.
- 어셔 가의 몰락
1839년 발표. 이듬해에 《괴기담》에 수록되었다. 전통있는 집안의 후예인 로데릭 어셔의 긴급한 편지로 초대된 친구 ‘나’는 잔뜩 흐린 가을날에 그 저택을 찾는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어셔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저택의 무서운 사건을 목격한 ‘나’는 겁에 질려 밖으로 달아나다가 뒤돌아보니 저택은 두 동강이 나며 음울한 늪 속으로 침몰하였다. 정신이상을 겁내는 작가의 불안한 심리가 엿보이는 산문시풍의 걸작이다.
- 갈가마귀
1845년 발표, '갈가마귀'를 발표하면서 그는 일약 유명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갈가마귀‘는 이제는 가고 없는 연인에 대한 떨칠 수 없는 사랑과 추억에 대한 내용으로 세간의 호평을 받았다.
- 애너벨 리
사랑을 주제로 한 형식의 연애시이자 애도시. 20대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어린 아내 클렘(Virginia Clemm)을 추모하여 쓴 시로, 작가가 사망한 지 이틀 후인 1849년에 발표되었다.
버지니아 클렘은 1837년 14세의 어린 나이로 에드가 앨런 포와 결혼하여 10여년 동안 가난과 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에드가 앨런 포는 혹한 속에 담요도 없이 짚을 깐 침대에서 쓸쓸히 눈을 감은 아내를 바닷가의 어느 왕국에 사는 소녀 애너벨 리로 미화시켜 애도하고 있다.
저자소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배우 엘리자 포와 배우 데이비드 포 주니어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한살도 되기 전에 집을 나갔고, 결핵으로 사망했다. 어머니도 세 살 때 결핵으로 잃고 말았다. 그 후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의 성공한 담배 사업가인 존 앨런(John Allan)에게 입양되었다. 포는 1826년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일 년밖에 다니지 못했다. 포는 당시 자신의 도박 빚 때문에 의붓아버지와 거리가 멀어진 것으로 보이며, 1827년 5월 26일 에드거 페리라는 이름으로 미국군대에 사병으로 입대하였다. 같은 해, 그는 첫 번째 책인 태머레인 외(外) (Tamarlane and Other Poems)을 출판하였다. 2년간의 복무 후 원사로 제대하였다. 1829년, 의붓어머니인 프란시스 앨런이 죽었으며 그는 두 번째 책인 Al Aaraf을 출간하였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포는 의붓아버지와 화해하였고, 의붓아버지는 포를 웨스트포인트의 미국 군사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웨스트포인트에서의 시간은 불행했으며, 포는 명령 불복종으로 해고되었다. 이후 그의 의붓아버지는 1843년 3월 27일에 죽을 때까지 포를 다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포는 이후 미망인인 숙모, 마리아 클렘과 그녀의 딸인 버지니아와 함께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로 옮겨왔다. 포는 생계를 위해 소설을 썼으며, 1835년 겨울에는 리치먼드에서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Southern Literary Messenger)의 신문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했고 1837년 1월까지 일했다. 이 기간에 포는 그의 13살짜리 조카인 버지니아 클렘과 1836년 5월 16일 리치먼드에서 결혼했다.
포는 뉴욕에서 15개월을 허송세월한 다음, 필라델피아로 옮겨왔다. 도착하자마자, 아서 고든 핌의 모험(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을 출판하였고 호평을 받았다. 1839년 다수의 글, 평론, 소설을 썼는데, 이로 말미암아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에서 확립했던 예리한 비평가로서의 명성을 더욱 높이게 되었다. 1839년, 두 권의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에 관한 이야기들을 출판하였다. 경제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는 미국 문학사에서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는 《버튼》(Burton)지를 떠나 《그레이엄》(Graham)지의 부편집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즈음, 버지니아는 훗날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결핵의 첫 증세를 보였다. 포는 버지니아의 병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더욱 과음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레이엄을 떠나서 새로운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서, 이브닝 미러(Evening Mirror)에서 잠깐 일한 뒤, 브로드웨이 저널(Broadway Journal)의 편집장이 되었다. 거기서 그는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와 공개적인 논쟁을 벌였다. 1845년 1월 29일, 그는 이브닝 미러에 갈가마귀를 발표하였으며, 이는 곧 세간에 오르내렸다.
브로드웨이 저널은 1846년 폐간되었고, 그는 뉴욕 주 브롱크스 포드햄의 시골집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1847년 그의 아내 버지니아는 2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내의 사망이후 정신적으로 급격히 불안해진 그는 사라 헬렌 휘트먼에게 청혼했다. 하지만, 포의 음주벽과 괴벽으로 때문에 혼담은 성사되지 않았는데, 포 자신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때 아편을 과용하는 것으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한다.
1849년 10월 7일, 포는 볼티모어의 도로가에서 정신착란을 겪고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는 워싱턴 대학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며, 다음날 아침에 사망하였다. 몇몇에 따르면 포의 마지막 말은 “모든 것이 끝났다. 에디는 더 이상 없다고 적어주게.”였다고 한다(그의 묘비에도 적혀있다). 혹자는 그의 마지막 말이 “신이시여, 제 불쌍한 영혼을 거두소서!”였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