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갑질’은 21세기 한국에만 있던 것이 아니다. 개?돼지처럼 천대와 차별 속에 살아야 했던 조선 민중들의 쓰리고 아픈 삶을 24개 이야기로 만난다!
조선의 500년 정사(正史)는 문자를 지배했던 왕조와 양반계급을 중심으로 쓰였다. 양반들 입장에서 ‘왕후장상의 씨’는 운명처럼 정해진 것일 뿐 감히 신분상승이나 이탈은 생각할 수 없는 금기이고 민중들의 삶은 관심조차 없었다. 이러한 유교적인 계급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폭력적인 차별과 억압을 가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평등에 대한 생각은 반역죄와 같이 취급했다. 이 책에서는 조선 양반들이 주도했던 체제에서 그 숱한 민초들의 스러져갔던 삶 가운데 역사의 한 줄, 한 마디로나마 언급됐던 24명의 다양한 민중들을 만날 수 있다. 사는 것이 지옥인 평민 임 여인, 단청장이에 피리의 대가였던 장천용, 양반 주인의 잔혹한 포락지형이라는 사형(私刑)을 받고도 겨우 사노에서 관노로 속공될 수 있었던 여종 효양의 고단한 삶, 18세기 검무를 유행시킨 밀양 기생 운심 등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조선 사회의 밑바닥 인생인 노비, 백정, 기생, 농민에서 예인, 공인, 역관, 아전 같은 중인까지 역사책에서는 흔히 만나볼 수 없었던 이 땅의 민중들의 삶을 통해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되새겨야 할까. 재벌가, 상류층, 권력가들의 특권은 대물림하여 청탁과 부정부패로 철옹성처럼 유지되고 있고 공정한 기회와 사회 정의는 요원한 21세기 오늘에 말이다.
인고의 삶, 그러나 반전은 있다! 아들 83명으로 부농을 일군 김생, 일개 아전으로 판서의 바둑판을 뒤엎고 왕명을 거부한 김수팽, 장애를 초월한 악기연주가 김운란…한국 팩션의 대가 이수광 작가가 부활시킨 조선민중 이야기
민중의 삶은 아무리 짓밟아도 풀처럼 일어난다.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수많은 씨앗을 뿌리고 모진 삶을 이어가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전국을 떠돌며 아들만 83명을 둔 정력가 김생, 책 읽어주는 남자로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기수 이업복, 하급 공무원인 아전의 신분으로도 당당하고 기개 넘치는 삶을 살았던 김수팽, 귀신도 울고 갈만큼 연주의 달인이 되었던 장애인 악공 김운란, 묵묵히 평생 짚신만 삼은 유군업, 못난이 소리를 들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산 바보 안선원, 화, 욕심, 재산이 없이 병자를 치료한 심의 안경창…. 이들은 대부분 중인 이하의 신분으로 출세의 길이 막혀 좌절한 천재들도 있었고 시대와 불화하면서 처절하게 몸부림치거나, 광인이 되어 부평초로 떠돌다 거리에서 죽었다. 학문을 하고 글을 익혔어도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아까운 재능을 썩히고 사라진 이인(異人)이 된 것이다.
이 책은 역사의 주역으로 크게 대우받지는 못했지만 가난과 신분의 억압 속에서 한 맺힌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민초들의 서글픔과 애환이 절절히 그려진다. 저자의 탁월한 구성과 복원력으로 되살린 이야기들이 분노와 애달픔으로 현실의 우리에게 전달된다.
책 속에서
“소인이 세상을 산 지 어언 반 백 년이 넘었습니다. 복이 없어서 부귀영화는 누리지 못했으나 횡액을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윤질이 휩쓸어도 식구가 무탈했고, 전쟁이 났어도 가족이 죽지 않고 집이 불타지 않았습니다.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습니다만 저희는 배를 주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인이 어찌 세상을 원망하겠습니까?”
_p.67 못난이로 한 평생 살아가기_바보, 안선원
영조시대에 책을 읽어주는 직업을 가진 한 남자는 목소리가 여자처럼 곱고 얼굴과 살결이 희었다. 게다가 그는 여자들의 언문 필체도 잘 썼다.
어느 날 그는 얼굴에 분을 바르고 여자 옷으로 바꾸어 입은 뒤에 사대부 집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부녀자들은 그가 여자인 줄 알고 내실까지 기꺼이 들어오게 한 뒤에 책을 읽어달라고 청했다. 그가 여자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외를 할 필요가 없었다.
_p.88 책 읽어주는 남자_전기수, 이업복
이튿날 아침, 김수팽은 판서가 호조에 등청하자 사직서를 써서 제출했다.
“이는 너의 잘못이 아니다. 사직하지 말고 직분을 다하라.”
판서는 손을 내저으면서 김수팽의 사직서를 도로 내주었다. 김수팽이 판서의 바둑판을 쓸어버린 일은 경아전들에게 바람처럼 퍼졌다. 각 부서에 소속되어 있는 경아전들은 김수팽이 서리의 자존심을 세웠다고 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크게 다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_p.107 왕명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남자_아전, 김수팽
스님은 병자가 있는 곳이면 조선 팔도 어디든지 찾아갔다.
안경창은 스님과 함께 병자를 치료하러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스님은 병을 치료해주고 돈을 받지 않았다. 병자의 집에서 주는 밥 한 그릇과 하룻밤의 잠자리로 만족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누더기를 입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스님을 따라다니는 안경창도 해지고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_p.131 세 가지가 없던_심의, 안경창
장천용이 무산구곡을 퉁소로 불자, 맑고 시원한 한 줄기의 청풍이 불어왔다. 사람들은 오장육부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한 청량감이 들었다.
장천용이 무산구곡의 두 번째 곡을 연주하자 사방에서 채운(彩雲)이 몰려왔다. 사람들은 혼이 달아난 듯 넋을 잃고 장천용의 퉁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장천용이 세 번째 곡을 연주하자 어디선가 백학 한 쌍이 날아와 창천에서 춤을 추고, 공작새들이 쌍쌍이 날아오고, 뭇새들이 날아들어 지저귀며 장천용의 아름다운 퉁소 소리에 화답했다.
_p.160 떠돌이 예술가, 세상을 방랑하다_퉁소 장인, 장천용
성종은 지혜로운 군주여서 효양뿐 아니라 그녀의 일가족 모두를 속공하게 하여 사노에서 관노로 만들었다. 이는 포학한 유효손에게서 학대를 받지 않게는 했으나 여전히 노비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유효손에게는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
사헌부 관리들 뿐 아니라 형조에서도 속공은 불가하다고 여러 차례 아뢰었다. 효양 사건이 자신들이 거느리고 있는 노비들에게도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워 한 것이다.
_p.235 관노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산_여종, 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