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중복 허리의 뜨거운 땡볕 아래 덕순이는 누렇게 시든 병든 아내를 지게에 지고 대학병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무료진찰권을 내고 행여 아내의 병이 진기한 병이어서 그저 연구거리가 되어 월급 타며 병을 고치리라는 일념으로 기대에 차 있다. 길가 버들 밑에 쉬면서 병원에 가면 째자고 할까봐 눈물짓는 아내를 타박하지만 쌈지에 든 4전으로 노전에 벌여놓은 채미나 사서 먹일까 망설이기도 한다. 산부인과 문 밖에서 요량 없이 부어오른 아랫배를 걷어 안고 가쁜 숨에 괴로워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두 시간이나 보낸 끝에 진찰실로 불려들어 갔으나 연구거리로 월급을 받으리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뱃속에서 사산한 아이를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선고를 받는다. 아내는 아내대로 배는 쨀 수 없다며 기급하고, 아내를 들쳐 업고 돌아서는 지게는 오던 때보다 갑절이나 무겁다. 올 때 쉬던 나무그늘에서 땀을 들이면서 아내는 채미 대신 얼음냉수며 왜떡을 얻어먹지만 왜떡을 깨물던 아내는 사촌형님에게 꾸어온 쌀 두 되를 갚으라느니 빨래는 영근 어머니에게 부탁하라느니 차근차근 이르며 울먹거렸다. 필연 아내의 유언이라 깨달은 덕순은 아내를 도로 지고 일어서며 얼른 갖다 눕히고 죽이라도 한 그릇 더 얻어다 먹이는 것이 남편의 도리일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