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가 고를 거야
일찌감치 철이 든 열두 살짜리 소녀 은지에게 또래 남자 아이들은 유치하기만 하고, 이혼을 하고도 여전히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엄마와 그 옆에서 장단을 맞추는 언니는 한심할 뿐입니다. 무책임한 부모들 때문에 너무 빨리 인생의 쓴맛을 본, 자신과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보면 딱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오지요. 은지는 속으로 가족이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헤어짐 없이 똘똘 뭉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가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새아빠가 될지도 모르는 엄마의 남자 친구가 등장하면서 평온했던 은지의 일상은 긴장과 불안감으로 요동치고, 급기야 자신이 직접 믿음직한 새아빠를 찾겠노라 선언하며 두 팔을 걷어붙이기에 이릅니다.
푸른문학상 수상작가인 김해우의 첫 장편동화 『아빠는 내가 고를 거야』는 가족의 해체를 딛고 일어선 아이가 삶의 진실을 직시하는 한편,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자 애쓰는 적극적인 모습을 묘사한 동화입니다. 주인공이 엄마의 이성 교제에 관여하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경쾌하게 그리면서 관계와 소통에 대한 주제를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속이 꽉 찬 애어른인 척하지만 사실 은지의 내면에는 사람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이러한 은지의 모습에서,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어도 그 흉터는 남아서 아이들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뒤흔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이미 한 번의 실패로 희망보다 체념을 먼저 배운 아이에게 ‘가족의 재구성’은 똑같은 실패가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기는 만만찮은 현실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시종일관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고, 경쾌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안에 이토록 현실적인 아픔과 고뇌가 밀도 높게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