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왕국 최치원
이미 네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열 살 무렵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모두 읽을 정도로 학문이 뛰어났던 최치원으로서는, 실력만 뛰
어나면 누구나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를 할 수 있는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것밖에 달리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라를 떠나기 직전에 아버
지와 십 년 안에 과거에 급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불과 6년 만에 빈공과에 급제하였습니다. 그러나 당나라도 현종 때의 안록산의 난을 발단으
로 구보의 난, 방훈의 난이 잇달아 일어나 국운은 쇠락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황소의 난이 일어났고, 최치원은 자신
을 돌봐 준 고변의 종사관이 되어 문서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황소가 그 글을 읽고 침대에서 넘
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지요. 최치원은 당나라 황제에게서까지 인정을 받는 대문장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한시
도 신라를 잊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885년에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신라 사회는 여전히 골품제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 선진국에서 얻
은 명성이나 익혀 온 경륜을 펼 길이 없었습니다. 최치원은 진성여왕 8년에 시무책 10여 조를 조정에 올려 난국의 타개책과 정치의 방향을 제
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