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문화 운동사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어린이 문화 운동
일제 강점기라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어린이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운동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방정환을 비롯한 어린이 운동가들이 잡지 <어린이>를 만들고, 어린이날 행사를 열면서부터입니다. 이 책은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90년이 넘는 어린이 문화 운동의 흐름을 담았습니다. 1970년 이후 어린이 운동 현장이라면 어느 곳에나 함께했던 글쓴이의 생생한 경험과 관찰이 이 책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어린이로 살 수 있는 참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길에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린이 문화 운동이라고요?
“노동자 운동, 농민 운동, 빈민 운동 들은 들어보았는데, ‘어린이 문화 운동’이라고?” 하며 어린이 문화 운동(이하 ‘어린이 운동’)이라는 말을 낯설게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이 문화 운동사>를 쓴 글쓴이는 어린이 운동의 뜻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어린이 운동이란 어린이들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지키고 가꾸기 위한 사회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어린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어린이를 위한 교육을 바꾸고, 어린이를 위한 문화를 바꾸고, 정치와 경제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오늘을 사는 어린이는 내일을 열어 갈 새로운 사람들이다. 곧 오늘 우리 어린이들이 어떤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느냐에 따라 다음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 결정된다. -본문 14쪽
어린이 운동이란 곧 사회 문화를 바꾸는 일입니다. 모든 사회 문화 운동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 어린이 운동입니다. 어린이는 동심을 가져 가장 순수하면서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가장 약자입니다. 모든 어른들은 어린 시절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 차별받았던 느낌,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 구조의 문제와 어른들의 이기심, 어린이가 어른의 화풀이 대상이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억울한 어린이가 없는 사회, 차별받는 어린이가 없는 사회야말로 어린이가 온전히 어린이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운동은 가장 기초가 되는 운동이며, 꼭 필요한 운동인 것입니다.
항일 투쟁기 때부터 오늘날까지 어린이 운동의 흐름을 한눈에
우리 나라에서 어린이에 대한 자각은 실학사상에서 그 싹을 틔우고, 동학사상에서 펼쳐지기 시작해 방정환을 비롯한 어린이 운동가들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바로 1923년 3월에 잡지 <어린이>를 펴내고, 1923년 5월 1일에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이 열린 것입니다.(기념식은 1923년에 처음 열렸지만, 어린이날을 선포한 것은 1922년입니다)
《어린이 문화 운동사》는 어린이 운동을 본격으로 시작한 이때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어린이 운동의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항일 투쟁기 어린이 운동에 대한 고찰은 책으로 나온 적이 있지만, 6·25전쟁 뒤부터 오늘날까지의 어린이 운동을 다룬 책은 처음입니다.
‘1부 항일 투쟁기 어린이 문화 운동’은 일제 강점기의 탄압 속에서 어린이 해방을 위해 벌인 여러 운동을 담고 있습니다. 어린이 운동의 주도권이 사회주의 계열로 넘어가면서 ‘문화 운동’보다 ‘계급투쟁’ 성격이 강해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담았습니다.
‘2부 현대 어린이 문화 운동’에는 6·25전쟁 뒤부터 2000년대 오늘날까지 일어난 어린이 운동의 흐름을 담았습니다. 어린이 문화는 사회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회의 문화와 어린이 문화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쟁 뒤 반공이 사회의 주요 흐름으로 작용할 때, 어린이 문학과 어린이 문화 역시 이 흐름에서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유신 정권과 군사 정권이라는 어둠 속에서 어린이 문화를 살리기 위한 활동이 여러 분야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3부,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어린이 노래, 어린이 만화의 흐름을 짚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어린이책 전문서점을 살려야 한다는 여러 제언들도 담고 있습니다. 아울러 어린이 운동의 여러 부문들, 그리고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소중하고 생생한 사진 자료들
첫 어린이날은 노동자의 날과 같은 5월 1일이었다가 1928년부터 5월 첫 번째 일요일이 어린이날이 되었습니다. 1946년부터는 지금과 같은 5월 5일이 어린이날이 되었습니다. 1923년부터 1927년 사이에 만들어진 어린이날 전단지 사진과 어린이날이 5월 첫 번째 일요일이었을 때 만들어진 전단지 사진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독자들이 좀 더 생생하게 어린이 문화 운동의 여러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사진 자료 29장을 실었습니다.
1999년은 새 천년을 눈앞에 둔 시기이면서 동시에 방정환 탄생 100주년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린이도서연구회,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 어린이어깨동무 들이 모여 ‘새 천년 어린이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선언식에 모인 어린이들은 1920년대 어린이들처럼 깃발을 들고 행진을 했습니다. 그 귀한 사진도 실려 있으며, 잡지 <어린이>의 표지가 바뀌어 가는 모습, 우리 나라 첫 어린이 동요집인 《반달》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0년 넘게 어린이 운동을 한 현장 활동가가 쓴 책
글쓴이 이주영은 1977년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오덕 선생님이 낸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청년사)를 읽게 됩니다. 그 책에 큰 감명을 받고 이오덕 선생님을 찾아가 만나면서 어린이를 지키고, 어린이를 살리는 어린이 문화 운동 모든 현장에 있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양서협동조합 운동을 하고, <교사 소식>을 발간했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초등 교사 모임들을 만들어 나갔고, 1980년대에는 서울YMCA초등교육자회, 전국초등민주교육협의회(전초협) 활동을 일구어 냈습니다. 또한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들어 지역에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이 생기도록 했습니다.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 어린이어깨동무에서도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어린이 문화 운동 한가운데서 경험한 30년 넘는 활동을 정리하면서 이 책을 펴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이 책에는 사료를 연구한 연구자들의 글과는 다른 생생함과 현장 활동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세세한 내용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